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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간 위기 딛고 창간 50주년 맞은 잡지 ‘샘터’

50만부 호황 지나 적자 탓에 무기한 휴간 결정 세계 각지서 소식 들은 독자들 정기구독 행렬 법정·피천득·최인호 등 내로라하는 필진 명성 웹툰·전자책 등 2차 콘텐츠 협업 등 적극 도입

지난 12일 서울 혜화동 샘터 사무실에서 김성구 발행인이 창간 50주년 기념호를 들어 보이고 있다. 뒤로는 샘터의 창립자이자 김 발행인의 선친인 김재순 전 국회의장의 사진이 보인다. 지난해 말 폐간 위기를 겪은 김 발행인은 ‘샘터’의 철학을 지키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갈 채비를 마친 듯 “바닥을 찍었으니 이제 튀어 오를 길을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국민 잡지’ 샘터가 창간 50주년을 맞았다. 1970년 4월 김재순(1923~2016) 전 국회의장이 국제기능올림픽을 준비하던 기술자들에게서 “집이 가난해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 된다”는 하소연을 듣고 수필 중심의 교양지를 창간한 지 반세기, 통권 602호째다. 지난해 말 사실상 폐간에 가까운 ‘무기한 휴간’ 결정을 내렸다 기적적으로 회생했다. “밑바닥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더라고요.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 입장에서 ‘우리 식구들한테 퇴직금도 못 챙겨 줄 수 있겠구나’ 하는 것보다 더 밑바닥이 어디 있겠어요.”지난 12일 서울 혜화동 샘터 사무실에서 만난 김성구(60) 발행인은 불과 몇 달 전을 떠올리면 감개무량한 듯했다. “아버지가 25년간 이끈 샘터를 제가 맡아 24년을 했는데, 한 해만 더 하면 반반이잖아요. 아버지한테 죄스러웠습니다. 광화문에서 ‘폐간한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고 사무실까지 걸어오는데 계속 눈물이 났죠.” 종이잡지가 호황을 누리던 시절 탄생한 샘터는 1970년대 후반 50만부 이상의 발행 부수를 기록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1995년 김 발행인이 대표를 맡던 시절부터는 이미 적자가 누적된 상태였다. 매년 평균 3억원 정도의 적자가 생겼다. 그럼에도 법정스님, 피천득·최인호 선생님 등 대표 필진들이 낸 단행본 수익이 ‘샘터’를 유지시켰다. 출판 시장 경기가 나빠지면서 지난해에는 매출이 3분의1까지 떨어졌다. 결국 김 발행인이 내린 결론은 ‘무기한 휴간’이었다. 소식이 전해지자 김 발행인도 놀랄 만큼 각지에서 독자들의 성원이 답지했다. 샘터가 일상이었던 노년층, 샘터를 통해 고국의 소식을 듣던 재외동포, 기성 독자들의 자녀 세대인 ‘3040’으로부터 정기 구독 신청이 줄을 이었다. 오랜 독자들은 편지와 격려금을 보내왔다. 파독 간호사였던 독자는 “어려웠던 시절 ‘샘터’를 보고 용기와 희망을 놓지 않았는데 폐간 소식을 듣고 자식 잃은 엄마가 된 심정이었다”고 했다. 그 독자는 한국에 와서 작은 봉투까지 놓고 갔다.

2003년 샘터 창간 33주년, 지령 400호 기념 대담 후 포즈를 취한 샘터 관계자들. 왼쪽부터 법정 스님, 피천득 수필가, 김재순 전 샘터 발행인, 최인호 소설가.샘터 제공

우리은행에서 6개월간 5000만원을 지원하는 등 기업 후원도 이어졌다. 정기 구독자만 2400명 이상 늘었다. 오는 6월 샘터에서 시·수필집 ‘친구에게’를 내는 이해인 수녀는 인세를 안 받겠다고 했다. ‘월간 샘터’를 살리는 일에 보탬이 되라는 뜻이다. “샘터 식구들이 자발적으로 월급을 삭감해 가면서, 이 ‘50주년 기념호’가 나왔습니다. 기적을 겪고 나니 ‘적극적으로 생각을 해 보자’고 다시 한번 힘을 내게 됐습니다.” 이 수녀를 비롯해 수필가 피천득, 법정 스님, 소설가 최인호, 동화작가 정채봉 등 내로라하는 필진은 샘터의 자산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들과 교유했던 김 발행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필자를 물었다. “고 장영희 서강대 교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소아마비를 극복하고 세 차례 암 투병 과정을 겪으며 수필가·칼럼니스트로 활동해 온 장 교수다. “말과 행동과 글이 모두 같은 분을 참 뵙기가 힘든데, 장 선생님이 그런 분이셨다”는 김 발행인은 “1급 장애인이셨지만 생각에 성역이 없었다. 돌아가시고 나서 유족들까지 같은 마음으로 인세를 제자 장학금으로 기부했다”고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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